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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의 이야기/음악인의 삶

영원한 꿈으로만 남게 될 희귀악기, 하프시코드

다시 1일 1포스팅을 결심하고 내 방을 둘러보면서

오늘은 무엇에 대해 포스팅할지 고민하였다.

책장도 살펴보고, 소장하고 있는 음반들도

뒤적거리다가 이들 사이에서 공통 단어가

떠올랐으니 그건 바로 하프시코드였다.



소장하고 있는 악보집의 표지


이 단어를 보고 뭐지? 하시는 분들에게 잠깐 알기쉽게

소개를 하자면 오늘날 대중화되어 있는 악기,

피아노, 그 중에서도 그랜드 피아노의

전신 혹은 조상이라고 할 수 있다.

생김새는 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그랜드 피아노와 같은데

소리내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피아노는 해머가 현을 두들겨서 소리를 낸다면

하프시코드는 픽이라고 하는 집게(?) 같은 것이

현을 튕기기 때문에 좀 더 날카롭고 금속성이

강한 소리가 난다. 건반이 한 단짜리도 있고

오르간처럼 두 단 짜리도 있는데

좌우의 버튼으로 음색이 조절 가능하다.

하프시코드는 영어권에서 사용되는

명칭이고 어쩌면 몇몇 분들에게는

독어인 쳄발로라는 명칭이 더

친숙하게 느껴지실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여기에는 많은 사연이 숨어 있다.

왜냐하면 나는 한 때 하프시코드 연주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이다. 위의 악보집을

가지고 있는 이유도 그 중 하나였고

나는 당시 희망하던 학교를 목표로

집에서 업라이트 피아노로 거의 하루종일 연습에만

매진하곤 하였었다. 물론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정말 무지했었구나라고.


꿈에만 사로잡혔던 시절,

주변 사람들은 이러한 나를 보고 모두 비웃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그런 거에 대하여 전혀 게의치

않았던 게 더 큰 문제였다. 음악 대학원을 가려면 당장에

레슨을 받아야 하는데 아무런 인맥도 없던 나는

레슨을 단 한 번이라도 받을 수 있는 기회,

아니 악기를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나는 인터넷 상에서

연주자가 될 것이라고 떠들었었고

오히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지지와 응원을 받았었다.


이러한 가운데,

나의 꿈이 한 발짝 도약하는 계기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당시 섬기던 교회에서 주최하였던

음악회의 한 무대를 맡는 것이었다.

부목사님의 제안으로 나는 교회에서

메인으로 사용하고 있는 마스터 키보드에서

하프시코드 음색을 찾아 그걸 가지고

헨델의 유쾌한 대장간 변주곡을 연주했었다.

실수도 조금 하였지만 나름 성공적이었고

사람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그래도 이것 또한 추억이니까



하지만 이후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나는 모든 걸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하면서 어느 날 문득 깨달은 것이 내가 그 동안 허황된 꿈만

쫓아서 살아왔구나라는 생각. 정말 현실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했었구나라는 자책감, 지극히 탑 클래스가 아니고서는

음악으로 먹고 산다는 건 왠만한 결단과 백 없이는 안되는구나

라는 현실 직시 등등..... 그러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로의 길을 몰색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누구는 그런다, 한국에서 공부한 게 아깝지 않냐고,

그리고 나의 담당 교수님께서도 그러셨다.

넌 평생 음악만 할 운명이라고. 그 당시에는

그 말에 동의하였지만 지금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원래 전공인 작곡을 계속 하려면

현대 음악에 귀가 트이고 안목이 있어야 하는데

난 현대음악 혐오주의자이다.


그러면 바로크 음악 쪽을 공부하면 되지라고 하시겠지만

요즘 시대에 이 스타일로 작곡해봤자 알아주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엔간한 실력 아니고서는 뜨기도 힘들다.

연주자? 난 알고 있다. 나의 치명적인(?) 약점을.

이제는 나이도 있고 여러가지 제약도 따르기 때문에

더 이상 음악을 공부한다는 건 내 삶에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대신 나는 글쓰기라는 나의 또다른 재능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다른 분야를 공부하며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그래도 미련은 남는가보다.

가끔씩 꿈을 꾸는데 꿈 속에는

항상 나만의 공간(방)이 있다.

그곳에는 진짜 하프시코드는 아니고

전자 하프시코드가 있는데

그것을 연주하는 꿈을 한번씩 꾼다.


사실 전자 하프시코드나따나 소장해볼까 하고

찾아봤는데 이것 또한 가격이 만만치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원하는 건 포지티브 오르간

음색도 잘 갖추어진 모델이었는데 내가 사는

주까지는 배달이 불가능하고 다른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결국에는

포기하고 말았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몇 년 째 자택근무처럼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사실 피아노 연습할 시간은 별로 없다.

교회 반주를 맡고 있다보니 한번씩

연습을 하긴 하는데 옛날만큼

피아노 앞에 앉아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사실

전자 악기는 나에게는 사치품이

될 수도 있다. 이 말에 부모님도

동의하셨다. 게다가 짐을 더

늘려 공간을 차지하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이쯤되니 제목처럼 결론이 날 법도 하다.

나에게 있어서 하프시코드는 영원한 꿈의 악기이다.

천국에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지상에서는

유튜브 영상들을 보며, 혹은 소장 앨범을 들으며

건반이 눌러지는 터치 등을 상상할 뿐이다.


몇 주 전에는 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하프시코드로

바흐 인벤션을 연주하는 걸 봤는데

내가 한 번도 만져보지도 못한

악기를 치고 있다는 사실에

질투가 났었다. 그렇다고

나는 태생이나 나의 거주지를

비관하지 않는다. 앞에서도

여러번 말했지만 음악에 대해서는

손을 탈탈 털어버린 상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프시코드는 단순한 독주 악기가 아니다.

바로크 음악에 대한 포스팅에서도 밝혔지만

하프시코드의 진정한 매력은 바로

오케스트라아 앙상블과의 조화에서 나타난다.

바소 콘티뉴오 연주, 어지간히 두뇌가 영석하지 않는 이상

아무나 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꿈의 악기"를 위하여 편곡하고 작품을 공유한다.






ps: 근데 정말 누구 말대로 나이를 먹어가니

뭐 하기가 정말 만사 귀찮다. 전에는

연주를 위하여 손사보까지 마다하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평균율 펼치고 피아노로 뚱땅거리기도 싫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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