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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는 것들

한때는 내 인생의 전부인 것만 같았던 전공 서적들

안녕하세요~, Barock입니다. 모두들 활기찬 월요일 아침을 맞이하고 계시는지요? 제가 사는 미국은 아직 일요일 밤이네요. 교회 잠깐 갔다 온 거밖에 없는데 은근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고 싶지만, 블로그 포스팅을 위해서 졸린 눈을 참아가며 자판을 두들기고 있습니다.


제 닉네임을 통하여 짐작하셨겠지만 저는 원래 음악, 그중에서도 작곡을 전공하였습니다. 바로크를 독일식으로 썼을 뿐이지 영어의 Baroque나 포르투갈 원어의 Barroco와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이 바로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기 때문에 제 닉네임을 보고 발음하기 어렵다 하시는 분은 앞으로 바로크 음악을 떠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여기에는 다른 의도도 있습니다.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풀이가 왠지 저를 대변해주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무튼 제 사연을 이야기하면 한도 끝도 없을 거 같아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중학교 시절 학교 축제에서 피아노 독주를 하며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왔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고 1이 되자 작곡레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수능과 실기 후 세 곳의 대학을 지원했는데 지방에서는 이름있는 K대학에 합격하였지만 아무에게도 밝힐 수 없었던 미국 이민 계획 때문에 저는 하는 수 없이 제가 살고 있던 지역의 C대학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고등학교부터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저를 가르쳐주신 교수님이나 선생님들, 그리고 주변 친구들, 선후배들 모두 저에게 이구동성으로 넌 전공 선택을 정말 잘 하였다, 작곡이 적성에 맞는구나 등의 칭찬을 자주 하셨습니다. 저 또한 1, 2학년 때까지는 작곡 전공으로서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학교에 다녔지요. 하지만 바로크 음악으로 클래식 입문을 하고 조성음악을 위주로 감상하는 저로서는 무조음악을 써야 하는 3, 4학년 과정에 도무지 적응할 수 없어서 방황의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학점도 낮을 수밖에 없었고요.


그리고 공부만 다가 아니었습니다. 작곡 전공생이라면 무조건 필참이었던 현대 음악제나 세미나에도 저는 선배들에게 찍히면서까지 불참하였습니다. 이쯤 되면 제가 얼마나 현대음악을 싫어하시는지 아시겠지요. 암튼 저의 인내심은 4학년 1학기 현악 사중주를 쓰는 데에서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곡을 진행시켜야 할지 몰라 연필을 내동댕이치고 한없이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게다가 그 당시 우리 집을 처분(?)한 상태라 남의 집에 신세를 지고 있어서 이런저런 불편함도 많이 느꼈던 시절이었고요.


하지만 감사하게도 모든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저는 미국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그 많던 이삿짐도 모두 무사히 인계되었고 마침내 저의 새 보금자리가 마련이 되었습니다. 책장에 책을 하나씩 나열하면서 앞으로 나에게 어떠한 미래가 펼쳐질지 그야말로 기대와 흥분의 도가니 속에 빠졌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유튜브를 우연히 보다 쳄발로라는 악기에 매료되어 뜬금없이 이 악기를 전공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날 이후로 집에 있는 업라이트 피아노로 매일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다 부질없는 행동들이었습니다.


왜 이런 심한 말을 하냐고요? 그건 바로 저는 선천적으로 그 악기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크 음악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지만 사실 연주자라는 경력을 쌓기 위해서는 많은 무대에서의 경험과 피나는 노력과 재능 등이 뒷밤침 되어야 하는데 저는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이런 말 하면 부끄럽지만 저의 오른팔과 손목에는 사실 장애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교회 반주나 혼자 취미 삼아 치는 건 가능하지만 바로크 시대의 건반악기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꾸밈음, 트릴 등을 소화해내기란 거의 역부족입니다.


연습하면 극복이 되지 않냐고 하시겠지만 아무리 연습을 백 번 천 번 해도 저는 저의 단점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깨끗하게 포기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음악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꿈도 접어버렸지요. 작곡으로 다시 도전하기에는 전 너무나도 상반된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사실 2009년을 필두로 저는 바흐가 그랬던 것처럼 바로크 음악을 쳄발로(영어권에서는 하프시코드) 독주나 협주곡 등으로 편곡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지라 현대 음악에 대한 감각은 거의 소멸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쨌거나 학창시절부터 미국 생활 초반 허황된 꿈을 추구하며 살던 시절까지 저는 그 무엇보다도 음악에 관한 책이라면 눈독을 들이곤 하였습니다. 단순히 정독을 넘어서서 작가나 음악가의 말 하나하나를 뼛속 깊이까지 마음에 새겼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음악에 대한 꿈을 포기하고 방 정리를 하는 와중에 전공서적들을 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힘들게 공부한 것들인데 기념으로 따나 놔두라는 엄마의 말씀에 그냥 책장 한 켠에 모셔두기만 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가끔 이 책들을 펼쳐보면 제가 얼마나 열정적인 학생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거 같습니다. 단순히 그 클래스에서 모두의 부러움을 살 만큼 top이었다는 것을 넘어서서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음악 전공이라는 자부심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예를 들자면 거의 천 페이지에 달하는 그라우트 서양음악사 같은 경우 일부러 집에서 공부하기 위해 사물함 배정도 거절하고 통학길 시내버스에서 늘 들고 다녔다는 겁니다. 다른 전공들처럼 악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보여줄 건 오로지 책이나 악보, 오선지 등이었는데 결코 머리가 텅 빈 음악학도가 아니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죠. 부전공이 피아노였던 관계로 주변 친구들은 제가 들고 다니는 악보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는 편이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 책장 사진은 저로 하여금 참으로 많은 회상들을 불러일으킵니다. 요즘에는 편곡하다 참고용으로 한 번씩 꺼내보곤 하는데 음악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때로는 지식이 동원되어야 하는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 지식이 단순히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훨씬 뛰어넘어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물려줄 수 있을지에 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음악은 귀도 단순히 듣는 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우리 시대 이전에 작곡된 곡들 같은 경우는 충분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그 곡의 연주나 감상을 마스터했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 책들을 가보로서 대대손손 물려주고 싶습니다. 지금은 비록 음악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편곡은 일종의 취미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완전히 음악과 결별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음악을 전공한 사람은 무수히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다 음악을 업으로 삼지는 않습니다. 그중에서 소수만이 음악가로서 성공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나머지는 제가 그랬던 것처럼 방황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거나 아예 다른 직종의 일자리를 얻어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모습이 어떻든지 간에 제가 이 자리를 빌어 당부드리고 싶은 말은 눈앞에 보이는 것만이, 내가 알고 있는 지식만이 결코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좀 더 현실적일 필요가 있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도록 먼저 다가가려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에게 음악이라는 선물을 내려주신 하나님, 못난 딸을 힘들게 뒷바라지해주신 부모님, 그리고 저를 받아주시고 제가 더 큰 무대를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지금의 제 모습은 많은 분들께서 예상하고 계시던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제가 가진 달란트를 잘 활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행복을 전해주는 데에 앞장서고 솔선수범할 것을 이 자리를 빌어 맹세합니다.






저의 진부한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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